오티움

(제대로 된) 휴식과 (노력하는) 취미의 중요성을 잘 설명해 놓은 책이다. 기쁨과 즐거움의 미묘한 차이도 재미있었고 혼자 있는 능력에 대한 견해도 좋았다. 다만 산책, 등산, 독서, 영화감상, 운동경기 관람등 내가 즐기는 뻔한 취미들이 (현재 방식대로는) 저자의 기준으로 보면 오티움이 아니라서 살짝 맘상했다. 그래도 수년동안 실천하고 연구까지 하고 있는 Self-Tracking 그 모든 걸 아우르는 오티움일지도 모른다.

Ask Again, Yes: A Novel

사랑과 용서에 관한 얘기인 것 같은데, 나는 공감도 잘 안되고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제목도 좀 별로인데다 전체적으로 어리둥절하다. 읽은 시간이 아까우니 애써 교훈을 하나 찾자면, 소중한 사람에게 문제가 있을때 감추고 숨기는 것 보다는 인정하고 도움을 구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사실. 그것이 정신질환이든 알콜중독이든.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도 떠올랐는데, 죄를 지은 당사자가 아닌 그 사람과 관련된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는 더 맞는 말인 것 같다.

아무튼, 계속

무엇이든 (나쁜일 빼고) 규칙적으로 꾸준히 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읽었다. 초반에는 작가의 항상성에 대한 관점이 흥미로웠는데 중반쯤부터 분야별 개인취향으로 전환되면서 지루해졌다. 그저 자기취향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 (장난감, 농구팀 및 농구선수, 음료등) 여러가지 항목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는 책이다. 다행히 길이도 짧고 가벼운 내용이라 후루룩 읽고 끝낼 수 있었다.

위스퍼링 룸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사람들이 능력과 성향에 따라 개체수를 조절해야 하는 대상이 되는 설정은 이제 흔해서 많이 놀랍거나 신기하지 않다. 매년 위험인물 8천 4백명을 제거하면 완벽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데 8천 4백이라는 숫자는 도대체 어떻게 나온걸까? 게다가 위험인물은 미국에만 모여있나? 첨단 나노기술을 바탕으로 거창하게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전개 특히나 마무리는 (이런 좋류의 책이나 영화들이 그렇듯) 평균이하. 어찌보면 (일부러?) 마무리를 안했다고 볼 수도 있다.

The Tyranny of Merit: What’s Become of the Common Good?

부와 권력이 세습되는 물질만능 시대에 누구나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 얼마나 공허하고 현실을 오도하는지를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책이다. 교육을 통해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있기는 하지만, 현실에서의 학교는 학문을 전달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줄세우고 등수를 매기는 곳으로 전락해 버렸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일은 흔치 않으며 양극화는 심화되고 고착되고 있다. 금수저니 흑수저니 하는 말들, 입시지옥 등등등 한국만 유난히 더하다고 착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많은 나라들이 겪고 있는 문제라서 놀라움과 살짝 안심을 동시에 느꼈다. 더불어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는 사실에 두려움이 엄습했다. (저자의 제안대로 제비뽑기로 대학을 보낸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닌듯 하다.)

허수아비 춤

10여년 전에 쓰여진, 기업비리를 다룬 소설인데 전혀 소설같지 않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묘사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읽을 수록 화가났지만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기에 (흔히 말하는 learned helplessness 상태로) 그저 안타깝고 암울할 뿐. 과연 대한민국은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지랄같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을것인가? 이 책이 수십년 뒤에도 여전히 오늘의 일로 느껴질까봐 두렵다.

지독한 스타트업

성실함과 똑똑함을 겸비한 주인공은 어린시절 불우한 환경속에서 자라면서 돈과 성공에 대한 집착을 무한대로 키운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은 탓에 비슷하게 욕심많은 사람들의 원한을 사고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막판 예상치 못한 반전까지 신경을 많이 쓰기는 했는데, 능구렁이 국회의원의 심하게 충동적인 살인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허술한 느낌이다.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한 여성사업가로 알려지더라도 누군가에 의해 살해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방명록을 낢겨야 하는 삶이라면 사절. 부와 성공에 상응하는 윤리의식에는 관심도 없는 주인공을 보면서 짜증도 나고 불쌍하기도 했다.

노멀 피플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엄청 훌륭한 소설이라는데, 1991년생의 낯선 아일랜드 작가가 쓴 소설이라 그런지 참 적응이 안됐다. 나는 이제 나이들어 어쩔 수 없이 꼰대이고 “안”노멀한건가? 아니면 요즘같은 시대에는 내가 알고있는 예전의 노멀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고, 내가 보기에 전혀 노멀해 보이지 않는 관계가 노멀이 되어버렸나? 어쩌먼 노멀 같은 것에 신경쓰지 말라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다 읽고나서 보니 표지 그림도 좀 이상하고 그냥 뭔가 개운치 않다.

한순간에

극한 순간에 다다르면 인간은 누구나 나약한 존재가 된다. 가족에게 해가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적극적으로 아이를 사지로 내모는 것,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두려움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 뒤따라 오지 못하는 여친을 뒤로하고 앞으로 꾸역꾸역 걸어나가는 것 등등이 평상시에는 평가하고 판단하기 쉬울 수 있다. 막상 내가 그 상황에 처한다면 과연 나는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까? 그런데 상대방의 자식을 사지로 내몰고도 사고 후에 그걸 모르는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건 용서받지 못할 저열한 짓이다. 그저 재미있는 책을 원했다. 이렇듯 인생에 대해 인간관계에 대해 심각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인줄 알았다면 읽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너에게 간다

작가의 이름이 박성진이고 평점도 나쁘지 않은 한국소설이라 깊이 고민하지 않고 읽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를 배경으로 하여 쓰여져서 소방관들의 열악한 환경과 그들의 헌신을 상기시키는 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화재 현장에서 다시만난 옛연인을 구하고 아이도 가지고 미래를 약속하는 해피엔딩을 맞이하지만, 현실에서는 공교롭게도 엊그제 한국에서 쿠팡 물류창고 화재가 있었고 한 집안의 가장인 구조대장이 순직했다. 과학기술도 의학도 발달하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세상이 되었는데도, 사람들의 이기심과 욕심이 훨씬 더 심하게 커져서 참으로 각박한 세상이 되었다. 요즘 한국뉴스를 열심히 보는 편인데 택배기사들 과로사와 노동자들 사고사 소식이 너무나 자주 들려와서, 그런데도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암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