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코니의 여자들

간만에 진짜 독특한 영화를 봤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프랑스 블랙 코미디라고 해서 마음의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 예상과는 조금 다르게 웃기면서 슬프고, 친구들의 우정에 살짝 감동까지 주는 작품이었다. 누군가의 죽음이 슬프거나 안타깝게 느껴지지 않은 그런 경우는 보통 사람대접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들까지 포함해서, 싫다고 말해도 못알아 듣고 강제로 관계를 맺는 남자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지 생각하니 끔찍했다.

무명 배우 엘리즈 역을 맡은 배우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했더니,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역을 맡았었다.

무명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두 일본인 선교사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일본은 싫지만 일본인 개개인을 미워할 수는 없다. 노리마츠 마사야스와 오다 나라지, 이 두 선교사의 헌신은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고 그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늬만 혹은 말로만 기독교인인 사람들이 넘쳐나는에 요즘, 그들의 삶은 더욱 숭고하게 느껴진다.

내가 좋아라 하는 찬송가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이 반주로 나와서 반가웠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Rounders

포커라는 게임이 중독되는 도박이 될 수도 있고, 사람과 판세를 읽는 기술이 요구되는 스포츠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인 것 같다. 주인공 맷 데이먼은 전 재산을 탕진하는 등의 우여곡절 끝에 결국 법대를 포기하고, 세계 최고의 포커 플레이어에 도전하기 위해 라스베거스로 향한다. Texas Hold’em은 그렉네 집에서 때때로 자주 했던 게임으로, 서점에서 포커 관련 책들을 살펴본 적도 있었다. 다른 경기들과 마찬가지로 잘 하는 사람들이 플레이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해서, 출장이나 여행 중에 케이블 채널을 볼 수 있는 호텔 방에서는 World Series of Poker 경기도 자주 보곤 했다. 그리고 맷 데이먼, 에드워드 노튼, 존 말코비치 모두 연기를 참 잘했다. 그래서 오래된 영화임에도 재미있게 보았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영화 포스터에는 무지개 떠있는 파란 하늘 아래 신이 난 세 아이의 모습과 함께 “우리를 행복하게 할 가장 사랑스러운 걸작” 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는데, 결말은 좀 많이 황당하고 사기당한 느낌이다. 국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국가의 잘못이 가장 크겠지만, 그렇다고 딸 아이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선을 넘은 엄마의 선택 역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4세 고시라는 말이 유행하는 대치동의 엄마들과 정반대에 있다고 해야 할까? 부모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자질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신명

원래는 개봉 후에 보려 했는데, 유료 시사회를 많이 봐줘야 개봉관이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박선생님과 함께 보았다. 급하게 제작된 저예산 영화라 허술한 면이 있고, 조금 과하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목숨 걸고 만든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봐줬으면 좋겠다.

윤동주, 달을 쏘다

2025년 5월 18일. 진짜진짜 오랜만에 뮤지컬을 봤다. 명신이, 성은이, 그리고 지연이랑 함께여서 참 좋았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

세상이 너무 뒤숭숭해서 가벼운 영화를 보고 싶었다. 초중반에는 살짝 저질 코미디처럼 느껴져서 후회스러웠지만, 뒤로 갈수록 나아지더니 감동적인 결말로 마무리됐다. 4년 전에 남편(콜린 퍼스)을 떠나보내고 두 아이를 홀로 키우며 고군분투 하던 브리짓이 다시 일을 시작하고 새로운 인연도 만나며 해피엔딩을 맞는다. 그런데도 브리짓이 사별한 남편 마크를 그리워하는 것을 보니, 팬데믹 동안에 돌아가신 반포 할머니 생각이 나서 자꾸 눈물이 났다. 이런 영화 볼 때마다 나도, 완벽하거나 대단하지 않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면서,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꿋꿋이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Past Lives

잔잔함 그 자체인데 지루하지 않은 영화다. 인연이나 전생같은 단어는 한국인에게는 많이 익숙하지만, 한국계가 아닌 토종 미국인이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가 좀 궁금하다. 내가 좋아하는 피천득의 수필 인연에서는 아니만났으면 좋았을 거라는 세번째 만남때문에 마음이 참 많이 아렸었다. 다 큰 어른이 된 후에도 (사랑이 아닌) 사람이 변하는데, 전혀 다른 환경에서 24년이라는 세월을 살아가며 성장하고 변화하는 동안 순수했던 어린시절의 그 마음이 그대로 유지된다 한들, 보면 애틋하고 좋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진 옛날에 찍은 사진과 같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Shohei Ohtani: Beyond the Dream

나 나름대로 노재팬 열심히 실천하는데 야구선수 오타니는 존경을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다. 능력있는 사람이 최선을 다하면 어떤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에 해당한다. 세계적인 야구선수가 되기위해 어려서부터 뚜렸한 목표의식과 대망을 품고 꾸준히 노력해서 아직도 한창인 나이에 이미 야구사에 길이남을 선수가 되었다. 인성이 좋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그가 노력했던 항목중에 “인간성”도 들어 있었다는 사실에 다시한번 놀랬다. 유학나오는 게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결심이었는데, 그보다 더 큰 결심에 따라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있는 나에게 좋은 감동과 길잡이가 되어주는 내용이었다. 이제 나이도 있고 해서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라는 생각으로 그저 편하게 살아보려고 했는데, 건강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야구 좋아하고 잘하는 오타니에는 비교가 안되지만, 나도 연구가 좋고 잘하고 싶고 연구를 통해서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