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

환갑이 지난 여자 킬러가 주인공이다. 젊은 시절 진행했던 청부 살인 대상의 아들이 킬러로 자라나 복수를 하려 했으나 연륜있는 주인공 할머니 킬러에게 결국은 패하는 결말은 살짝 억지스럽다. 이에 더해 몇몇 등장인물의 설정이나 행동이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왕년에 잘나갔던, 나이 들어 퇴물 취급을 받게된 할머니 킬러의 기구한 일생이 나름 흥미롭게 그려졌다. 겁나게 자세한 표현을 많이 길게 쓰는 경향이 있어서 술술 읽히지는 않았지만, 한국사람이 한글로 쓴 한국소설이 외국작가가 쓴 글을 번역해 놓은 것보다는 훨씬 자연스럽고 읽기 편하다는 생각을 다시한 번 했다.

6시 20분의 남자

어쩌다 보니 또다시 발다치 소설을 읽었지만, 이번에는 메모리 맨 시리즈가 아니었다. 이책의 새로운 주인공은 과잉기억증후군으로 인한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 아니었고, 대신 이런 소설에서 흔히 (?) 볼 수 있는 미 육군 특수부대 출신에, 뉴욕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로 취직할 만큼 머리까지 비상한 인물이다.물론 거기에 인품도 아주 훌륭하다. 한 때 마음을 주었던 직장동료가 숨진 채 발견되는 것으로부터 사건이 시작되고, 이후 (알고보니 그녀의 연인, 그녀의 부모 등) 여러 사람이 죽어나간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결말로 후반부가 특히나 재미있어서 예상보다 빨리 읽었다.

기억을 되살리는 남자

오랜만에 발다치 작가의 책을 읽었다. 우리의 메모리 맨이 새로운 파트너와 함께 하나의 공간에서 일어난 두 개의 (알고 보니 전혀 다른/상관없는) 살인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다. 여러차례에 걸쳐 반전도 있고 구성에 짜임새도 있고 재미가 없지는 않은데, 이상하게 몰입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물론, 내 집중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 일 수도 있다.) 그래도 남자 주인공이 안쓰러우면서 정이가고, 소설이라 그런지 아무래도 좀 후루룩 편하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

나이가 드니 때때로 자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인생이라는게 어떻게 보면 죽어가는 과정이니, 어떻게 살 것인지와 어떻게 죽을 것인지가 일맥 상통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얼마가 될 지 모르는 남은생을 잘 살다가 잘 죽고 싶다. 이 책의 저자처럼 억울한 죽음, 불쌍한 죽음에 관심 가져주고 어루만져 주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

물통은 구멍이 난 부분 이상으로 물을 채울 수 없고, 목걸이가 끊어질 때도 가장 약한 고리가 먼저 끊어진다. 우리 사회 역시 가장 약한 부분에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자연재해든 인재든 언제나 가난한 이들, 사회에서 소외받은 이들이 가장 큰 희생자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희생과 비극은 결국 사회 전체로 번진다. 이것이 우리가 불편을 감수하고, 가장 약한 곳에서 출발해야 하는 이유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의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죽은 사람에게도 의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는 저자가 오래전 절판되어 구할 수 없는 책에서 읽었던 구절이라며 다음과 같이 다소 극단적인 “젊은이의 직업 선택의 십계”를 소개했다.

1.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3.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4.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5.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6.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7.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8.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 부모나 아내가,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청춘의 독서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인 중 한명이자, 내가 격하게 존경하는 유시민 “작가”가 어린 시절부터 읽었던 수많은 책들 중에 청년 유시민을 만든 원천으로 꼽은 15권이 이 책에 소개되어 있다. 2009년에 출간된 책의 특별증보판인데, 새로 추가된 15장에서 계엄 사태까지 언급된 것을 보고 확인해보니 종이책은 4월 30일에 출간되었다.

우선은 『자유론』, 『 죄와 벌』, 『맹자』 정도를 읽고 싶은데, 읽으려고 사 놓은 다른 책들도 좀 있어서 고민스럽다. 한국에 돌아온 후 아쉬운 점 중 하나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예전 미국에서 지낼 때만큼 책을 읽지 못한다는 점이다.

밀은 1859년 그 옛날에 쓴 책에서 그런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했다. 어리석은 자를 대통령으로 뽑은 이후 화나고 아프고 어이없는 일들을 견디고 이겨낸 이들에게, 계엄의 밤 국회에서 계엄군을 막아섰던 시민들에게, 남태령의 기적을 만든 젊은이들에게, 눈보라를 맞으며 헌법재판소 앞에서 밤을 지새웠던 남녀노소에게, 무한히 큰 감사의 마음을 얹어 그 말을 전하고 싶다.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이 오늘 우리를 본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대들은 인간의 모든 자랑스러운 것의 근원을 보여주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자랑스러워해도 됩니다.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단 한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화나고 아프고 어이없는 일들을 견디고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이 되어준 유시민 작가에게 무한히 큰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1. 위대한 한 사람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
  2. 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 리영희, 『전환시대의 논리』
  3. 청춘을 뒤흔든 혁명의 매력 :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 선언』
  4. 불평등은 불가피한 자연법칙인가 : 토머스 맬서스, 『인구론』
  5.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알렉산드르 푸시킨, 『대위의 딸』
  6. 진정한 보수주의자를 만나다 : 맹자, 『맹자』
  7. 어떤 곳에도 속할 수 없는 개인의 욕망 : 최인훈, 『광장』
  8. 권력투쟁의 빛과 그림자 : 사마천, 『사기』
  9. 슬픔도 힘이 될까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10.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인가 : 찰스 다윈, 『종의 기원』
  11. 우리는 왜 부자가 되려 하는가 : 소스타인 베블런, 『유한계급론』
  12. 문명이 발전해도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 헨리 조지, 『진보와 빈곤』
  13. 내 생각은 정말 내 생각일까 : 하인리히 뵐,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14. 역사의 진보를 믿어도 될까 : E. H. 카, 『역사란 무엇인가』
  15. 21세기 문명의 예언서: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라이팅 유니버스

많이 좋아라 하는 Ryan Holiday 책이라 큰 고민 없이 읽기 시작했다. ‘오래 사랑받는 작품을 위한 창작과 마케팅의 기술’이라는 부제가 책 내용을 정확히 요약하고 있다. 창작에 관한 부분을 읽는 동안은 정말 좋았는데, 마케팅에 대한 부분은 예상치 못했던 내용이라 조금 놀랐다. 너무나 많은 책들이 쏟아지는 세상이라, 제대로 플랫폼과 마케팅 없이는 아무리 뛰어난 작품이라도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기가 힘든 것일까?

그렇다면 영원불멸의 작품을 만들기 위한 여정을 어디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나의 멘토 로버트 그린은 “고전으로 남을 작품을 만들기를 간절히 바라는 데서부터 시작한다”라고 말했다. 같은 맥락으로 에버노트의 창립자 필 리빈은 이렇게 말했다. “최고의 제품을 만들겠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 최고의 제품을 만들지 못한다.”

원서의 제목은 Perennial Seller: The Art of Making and Marketing Work that Lasts 다. 그나저나 한글판 책 표지 너무 구리다.

여고생 핍의 사건 파일

똑똑한 여고생이 살인 사건의 실체를 밝혀나가는 내용이라, 예전에 재미있게 봤던 Veronica Mars 가 자꾸 생각났다. 단순히 흥미만을 자극하는게 아니라, 학교폭력, 약물남용, 부모의 정서적 학대,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 등등의 문제들을 담아 내고 있어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생 시절에 마냥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한국이 아직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지 못해 경제적인 풍요는 없었지만, 여러가지 면에서 덜 각박하고 더 따뜻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는 공기가 참 깨끗하고 하늘이 정말 맑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생각해보니, 전문적인(?) 살인범에 의한 범행이 아니어서 사건이 있고 5년이나 지난 후에 진행된 여고생의 탐문조사에 의해 살인범의 꼬리가 밟히는 일이 벌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

거인의 노트

얼마전에 우연히 유튜브에서 월간 다이어리 쓰는 법이라는 영상을 통해 저자에 대해 알게 되었다. 기록에 대한 로망이 있는지라 큰 기대를 가지고 읽었는데 기록하며 읽지 않아서 그런지 생각보다 크게 남는 것은 없다. Self-tracking 도 좋아라 하고 Bullet journaling 도 따라하면서 효과도 좀 보았고 지금도 특별한 체계없이 해야할 일 한 일들을 적기도 한다. 다만, 저자가 소개한 정도의 기록을 꾸준히 할 엄두는 나지 않는다. 박사공부할때부터 연습장처럼 썼던 공책들도 몇 권 있는데, 이제 와서 돌이켜 보니 뿌듯한 마음과 더불어 뭐하러 이제까지 가지고 있나 싶기도 해서 조만간 폐기할 듯 하다. 기록을 잘해서 대단히 삶을 바꾸고 유능해지는 것도 좋겠지만, 그냥 상황에 따라 효과적으로 잘 활용할 수 있으면 충분하지 싶다.

Taking Control of Your Personal Data

내용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강의를 한 교수가 아는 사람이라서 한 번 들어봤다.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그리고 저 교수는 나를 기억도 못하겠지만) 메릴랜드 대학에서 비슷한 시기에 박사공부를 같이 했다. 똑똑하고 말잘하고 키도 크고 체격도 좋고 용모도 괜찮은 백인 여자인데 진작에 박사받은 학교에 교수로 임용되어 정교수까지 되었고 역시나 강의도 참 잘한다. 프라이버시 생각하면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데, 게을러서 편리함을 추구하게 되는게 현실이다. 사용자의 개인정보가 털렸다는 메일들을 때때로 자주 받으면서 점점 더 무뎌지는데 비밀번호 관리라도 좀 더 신경써서 해야겠다. 페이스북같은 SNS 에 어카운트가 없어도 안전한게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고 다크웹에 대해서 조금 알게되었다.

Financial Literacy: Finding Your Way in the Financial Markets

난 정말이지 경제에 약한 것 같다. 처음에는 조금 들을만 했는데 중반즈음부터는 집중이 잘 안되서 반복해서 들어야했다. 요즘은 근로소득만으로는 부족하고 투자를 해서 자본소득을 올릴 수 있어야하는 시절인 것 같다. 맨 마지막 강좌 (The Future of Finance) 에서 배운바에 따르면 (생각보다?) 정부가 국민을 위해 대단한 걸 해주지 않기에 개개인이 미리미리 잘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나한테는 돈에 대해 생각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라서 어떻게 극복할지 좀 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다.

each of us needs to take on much more responsibility for our financial well-being than previous generations d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