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inist

결코 유쾌한 영화가 아닌지라 왜 이런 영화를 골랐을까 후회하면서 봤다. 지각있는 사람 같은데 도대체 왜 불면증으로 일년이나 고생하면서 치료받을 생각을 안하고 저리 미쳐가는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런데 5분여를 남겨두고 그 이유가 밝혀졌다. 황당함, 살짝 짜증, 그리고 놀라움을 한꺼번에 느꼈으며,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저렇게 무서운거구나 싶었다. (다만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그런 죄책감은 어느 정도 착한 사람들만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20세기 소녀

간만에 고딩의 풋풋한 첫사랑, 우정과 사랑 사이의 고민을 보니 까맣게 잊고 지냈던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인생이 무상하고, 엄청 착한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잘 보냈다고 생각한다. 참 좋은 시절이었지만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선뜻 그럴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나중에 할머니 되고나면 반백이 다되가는 지금이 그리울 것이다. 그때도 큰 후회는 하지 않도록 잘 지내면서 곱게(?) 늙어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Southpaw

사랑하는 아내와 어여쁜 딸과 행복한 가정을 꾸린 43승 무패의 세계챔피언이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자리에서 있다가 사고로 아내를 잃고 딸의 양육권마저 빼앗길 위기에 처하며 나락으로 떨어진 후 힘겹게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다. (포스터에 보이는 레이첼 맥아담스는 초반에만 살짝 등장한다.) 정말 진부하고 뻔한 내용인데도 재미있게 보았다. 예상을 깨고 틀에서 벗어난 것을 하나 꼽자면, 주인공이 재기전에서 KO 가 아닌 아슬아슬한 판정승으로 이겼다는 점이다. 진정한 어른이 되고 자신의 인생에서 승리하려면, 자신의 감정과 삶을 스스로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배우들이 연기도 곧 잘 했고 싸이코 패스 살인마가 주인공이다보니 긴장이 좀 되기는 했다. 그러나, 개연성 떨어지는 내용 특히나 제법 유능한 것 같은데 공사를 전혀 구분하지 못하는 형사때문에 짜증이 더 많이 나는 영화였다. 사건보고는 절대 안하고, 민간인을 미끼로 쓰면서 연쇄살인범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다는게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7년인가만에 만난 아들을 뒷모습을 보고 구분하려는것도 그렇고, 아빠랑 절친보다 가게 손님으로 처음만난 남자를 더 믿는다는 것도 억지스러웠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마무리도 좀 별로였다. 아무리 아빠를 죽였다고 생각했어도 본인이 죽다 살아난 민간인이 총으로 사람을 쏜다는 설정 역시나 공감이 잘 안됐고, 쓸데없이 늘어뜨린 느낌을 지울수 없었다.

TÁR

배우들의 연기력 때문이지 훌륭한 대본때문인지 실존 인물에 기반한 영화가 아닌데도 혹시 그런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2018년 VIS 가 베를린에서 있었는데, 때마침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말러 교향곡 5번을 공연한 덕분에 너무 멋진 공연을 경험할 수 있었다. 영화보는 내내 4년도 지난버린 그때가 자꾸 떠올라서 기분이 묘했다. 화려한 경력을 가진 베를린 필하모넥 최초의 여성 수석 지휘자 리디아 타르가 자서전 발간과 말러 교향곡 녹음 음반 발매를 앞두고 추락하는 과정이 조금은 정신없이 조금은 지루하게 그려진다. 자세한 설명을 해주는 영화도 별로지만 엄청 집중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들게 만드는 영화도 별로다. 花無十日紅 權不十年 이라는 말에서처럼 한번 흥한 것은 반드시 쇠하기 마련이고 영원한 왕자는 없으니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강한 권력을 가지게 될수록 겸손하려 노력하는 것이 중요한것 같다.

2 Guns

멕시코 마약카르텔을 수사하는데 DEA 와 US Navy 두 기관에서 서로 알지 못하는 비밀요원을 투입했다. 알고보니 US Navy 쪽 상사는 사고치고 무단이탈중인 요원을 이용해 단순히 돈을 훔쳐낼 목적이었고, 더 자세히 알고보니 그 나쁜 놈은 DEA 요원의 옛 연인을 꼬셔서 정보를 알아내고 일을 꾸몄던 것이었다. 더불어 그들이 훔쳐낸 돈은 카르텔이 미국 CIA 에 받치던 세금(?) 같은 돈이었다. 졸지에 조직에서 버림받고 쫒기는 신세가 된 두 비밀요원이 온갖 악당들 다 혼내주고 돈도 차지하는 말은 별로 안되지만 재미는 있었던 영화였다.

트롤리

작년연말 한국에 있을때 방영을 시작했는데 한 회 한 회를 기다리며 보는게 싫어서 거의 끝날때까지 기다렸다 보기 시작했다. 작가가 성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엄청난 애정과 관심이 있었나본데,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않는 혹은 할 수 없는 일을 만들려고 너무 무리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 집 사는 가족같은 누나를 “실수”로 성폭행한 인간이 아내에게 무한 믿음을 보인다는게 아이러니하고, 범죄의 현장이었던 서재의 문이 열려있으면 쳐다도 못보는데 한 집에서 5년을 단란한 가족으로 살아내는 피해자라는 설정도 공감이 안됐다. 성폭행 사실을 알기 전에도 위선자 남편이 나 믿지? 사랑해 소리 할때마다 토나올것 같았다. 목적이 정의롭다고 해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합리화 할 수는 없다는 것 하나는 제대로 보여주었다. 유학나오기 전 전성기를 누렸던 배우 김현주를 진짜 오랜만에 봐서 반가웠다.

Glass Onion

재미가 없지는 않았는데 전편보다는 덜했다.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탐정이 이미 상황을 다 파악하고 결과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핵심 정보들이 드러나기 때문에 대충 찍는 수준을 넘어 미리 추측을 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예를 들면 핵심인물이 이미 살해되었고 그녀의 쌍둥이 자매가 미리 탐정을 찾아갔다는 사실이나, 총을 맞고 죽은 줄 알았는데 안주머니 속에 넣어두었던 수첩때문에 살아있었다는 사실 등등. 핵심 증거를 찾았으면 경찰에 신고를 하지 뭐하러 나쁜 놈들한테 보여줘서 사람을 죽이고 증거를 태워버릴 기회를 주는 것이 늘 이해가 안되는데, 그러지 않으면 영화 자체가 안만들어져서 그러는건지 원래 그게 일반적인 사람들이 대응하는 방식인지 궁금해졌다.

Our Great National Parks

나도 모르게 미국 중심적으로 사고하는게, 처음 제목을 보고 미국 국립공원들이라고 생각했다. 총 5개 에피소드인데 첫회는 인트로에 해당하고 2회부터 한 에피소드당 하나의 국립공원을 다뤘다. 어려서 동물의 왕국보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 것도 좋았고, 멋진 자연경관을 구경하는 것도 좋았다. 아웃도어 브랜드로 유명해서 알게된 파타고니아도 참 멋진 곳이라서 반가웠다. 말을 또박또박 잘하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나래이션을 하고 가끔 직접 등장하기도 해서 살짝 신기했다. 다만 대자연을 자유롭게 누비는 동물들을 보니 동물원에서 봤던 녀석들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늙어서 그런지 직접 가려면 고생스러울 걸 같고 잘 찍은 경관을 큰 화면으로 편히 보는게 좋다.

  • A World of Wonder
  • Chilean Patagonia
  • Tsavo, Kenya
  • Monterey Bay National Marine Sanctuary, USA
  • Gunung Leuser, Indonesia

스플릿

주인공인 유지태를 굳이 하반신 마비를 만드는 결말 등 살짝 짜증나는 부분이 없지는 않았고, 길이도 조금 줄였으면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재미와 감동이 있었다. 종목에 상관없이 (잘하는 선수들의) 운동경기 관람을 좋아하고, 어려서부터 (뻔한 스토리라인과 결말에도 불구하고) 스포츠 관련 만화와 영화를 좋아하는데, 흔하지 않은 볼링영화가 좋았다. 결과가 뻔히 보여도 여전히 심장이 쫄깃쫄깃해졌다. 비록 다리도 온전치 않고 추레한 모습이기는 했지만, 좋아하는 배우 중 한명인 유지태가 멋지게 볼링공을 던지는 모습을 보는 것도 흐뭇했다. 영웅에서 안중근 의사역을 멋지게 연기했던 정성화는 정말 나쁘고 재수없는 놈을 제대로 연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