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는 있지만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다. (같은 저자가 쓴 다른 책들을 읽으면 이야기 전개나 이 책의 주인공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하다.) 스파이 하면 제일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007의 제임스 본드, 미션 임파서블의 탐 크루즈 (극중 스파이의 이름이 아니라 영화배우 이름), 본 아이덴티티의 제이슨 본 등등이다. 더불어 스파이가 주인공으로 흥행한 헐리우드 영화들은 화려하고 긴박하고 첨단기술을 자랑한다. 그런데 이 책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스파이는 은퇴하고 시골에서 농사짓는 할아버지로, 나도 모르게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대의를 위해서 개인의 삶을 온전히 포기하는 외롭고 고독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스파이라도 다 같은 스파이는 아니라서 산업스파이는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Category: 책과 글
The Woman in the Window: A Novel
길이를 절반 정도로 압축했으면 좀 더 재미있었을 수도. 불의의 사고로 남편과 딸을 잃은 아동심리학자가 광장공포증에 (+ 비공식적으로는 우울증, 과대망상, 알콜중독까지) 걸려서는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로 남의 집 엿보며 살다가 엄한 일을 목격한 것이 큰 줄거리를 이룬다. 중간에 소소한 반전이 있고, 끝에 가서는 예상치 못한 반전이 있는데, 얼른 끝났으면 싶은 마음에 막판 반전이 반갑지도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agoraphobia (광장공포증) 라는 질병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유일한(?) 수확이라는 가슴아픈 현실. 넷플릭스는 왜 이런 책을 영화화했는지 모르겠음.
Behind Closed Doors: A Novel
100년 뒤 우리는 이 세상에 없어요
초반에는 살짝 감동받았고 3분의 1 아니 절반정도까지도 잘 새겨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100년도 못 살 인생이니 모든게 사소하고, 그래서 잘못을 하거나 실수를 하거나 약속을 지키지 못해도 미안해 할 필요도 화를 낼 필요도 없다는 아주 단순한 논리. 무슨일이든 과하게 집착하는게 정신건강에 이롭지 않은 것은 사실이고 그래서 어느정도 새겨들을 부분이 있지만, 이렇듯 극도로 태평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주위에 있으면 피해를 보는건 늘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최소한의 책임감을 가지고 신의를 지키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라고 생각한다.
Think Again: The Power of Knowing What You Don’t Know
내가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들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틀리는 것을 두려워 말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기회로 삼고, 오랜시간 믿어왔던 일도 필요하면 되돌아 보고 버릴 수도 있는 사고의 유연성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하는데, 제대로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미천한지를 깨닫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너그러움 여유로움과 더불어, 혹은 그에 앞서 겸손함을 배우고 실천해야 하는것 같다. 꼰대들이 그리고 꼰대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꼭 읽어봐야 하는 책이 아닐까 싶다. 더 늦기전에 좋은 책을 접하게 되서 다행이다.
게임 오버
한국도 미국도 이러다 망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점점 자주 들고있는데 알고보니 온세상이 난리였구나. 역사가 미천한 자본주의 대마왕 미국에 비해, 사회보장제도 잘 되어있는 진짜 선진국인 역사도 깊은 유럽은 나은줄 알았더니 그저 내가 무지해서 잘 몰랐던거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마찬가지라더니 세상 곳곳이 우파 민족주의자들 득세로 암울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 중국은 역시나 좀 무서워해야 할 존재인 것 같고, Bill Gates 도 Hans Rosling 도 살짝 지나친 낙관주의자로 묘사되어서 좀 놀랐다. 과연 우리의 미래는 어찌 될것인가? 나의 어린시절은 지금처럼 풍요롭지 않았으나, 철없이 아무것도 모르고 보낸 그 어린시절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역시나 암울한 상황은 그저 외면하고 싶은 마음 ㅠ.ㅠ)
말 그릇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 죽비를 맞고 정신이 번쩍든다는 표현을 쓰셨는데, 이 책을 읽은 내심정이 딱그렇다. 온전히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말 그릇이 얼마나 작은지를 새삼 느끼면서 반성하게 했다. 좀있으면 한국나이로 50을 바라보는 시점이니 좀 늦은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노력해서 그릇을 조금이라도 키우고 싶다. 너그럽게 여유롭게 살고싶은 것은 바램만으로 되는 것이아니라 노력을 통해 얻어내야하는 어려운 일인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방식이 꼭 옳거나 유일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고, 어설픈 완벽주의와 집착과 거리를 두는 노력도 필요하다.
The Vanishing Half: A Novel
인종차별이랑 트랜스잰더 문제에 가정폭력을 살짝 양념으로 더해서 이야기를 꾸려냈다. 어려서 함께 가출한 쌍둥이 자매, 그런데 그 와중에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서 동생을 버리고 떠나버린 언니. 결혼해서 딸낳고 살다가 남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엄마품으로 돌아온 동생.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 운명의 장난으로 Catering 알바하다가 이모를 만난 조카가 비밀의 실마리를 풀어내기 시작하기에 결말이 참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조금 황당하고 밋밋하게 끝이났다. 자극적인 영화와 드라마에 길들여진 내 머리는 혼자서 여러생각을 많이했는데, 미국소설이라 그런지 피가 물보다 진한듯 진하지 않았다. 열심히 견뎌낸 동생의 삶이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는 못해도 진정으로 아껴주는 (사실혼 관계의) 남자와 반듯한 딸로 위로가 되서 다행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