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oldovers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1970년도, 한 보딩스쿨에서 크리스마스 연휴동안 찾아갈 곳 없는 세 명이 함께하는 시간을 그린 영화다. 처음에 남았던 학생 다섯 중에 한국에서 유학 온 아이도 하나 있었는데, 며칠 후 그 중 최고의 말썽꾸러기 한명만이 선생님과 주방장과 함께하게 된다. 엄격하고 독특한 성격때문에 학생이며 동료교수들이며 교장도 좋아하지 않는 그 선생님은 인간적이고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 아빠의 정신질환 때문에 엄마가 새아빠를 구한 그 말썽꾸러기 학생도 다시 퇴학당하고 군대식 사립 학교로 가게될까 두려워하는, 그저 아빠를 너무나 그리워 하는 아이였다. 살짝 지루할뻔한 잔잔한 드라마에 자극적이기 않은 코미디가 곁들여진 제법 볼만한 영화였다.

Two Lovers

사랑하지만 (다른 유부남을 사랑하기 때문에) 가질 수 없는 여자와 사랑하지는 않지만 가질 수 있는 여자 사이에서 고민하는 남자 이야기다. 내용에 공감이 안되는 것과 더불어 (배우는 좋아하지만) 맘에 드는 등장인물이 하나도 없어서 보는게 힘들었는데, 결말도 심하게 허무하다.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를 사랑하며 살아야하는 두번째 여자의 상황이 안타깝고, 오락가락하는 남자 주인공과 첫번째 여자는 왕짜증이다.

Fracture & The Place Beyond the Pines

호주 출장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본 영화를 두 편 보았는데 어쩌다보니(?) 둘 다 라이언 고슬링 주연을 맡았다. 한 편을 더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눈을 보호하기 위해 (생각보다 잘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Fracture 는 2007년 작품으로 대형 로펌에 스카우트 될만큼 능력인는 검사를 맡은 풋풋하면서도 세련된 라이언이 등장했다. 상대역은 그 이름도 유명한 안소니 홉킨스였는데 역시나 명불허전 대배우의 연기력을 보여준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과 잘 짜여진 구성을 갖춘 이 영화는 철두철미 사이코패스를 KO 시키는 놀라움과 기쁨을 선사해주었다.

The Place Beyond the Pines 는 뭔가 심오하고 서사가 있는데 내가 이해하기에는 조금 과한 영화다. 살다보면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이 분명하지 않은 일이 많다는 걸 배우게 되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상황들이 여럿 되는것 같다. 누구나 본인이 생각하는 최선의 선택을 내리고 그에 대한 결과를 받아들이며 살아가는게 인생이 아닌가 싶다. 좀 창피하지만 주인공인 라이언이 중간쯤에 죽어버려서 황당하고 맘상했다.

올빼미

후반부와 결말이 좀 황당하긴 했지만 제법 긴장되고 재미있었다. 제 자식을 죽이면서까지 지키고 싶은 자리와 권력이라니 참 섬뜩하다. 자신보다 훌륭한 제자를 키워내는 것이 선생의 기쁨이고, 자신보다 더 나은 자식을 길러내는 것이 부모의 자랑이어야 건강하고 행복한 세상일 것이라 믿는다. 권력에 대한 욕심이 많다 못해 욕심에 눈이 멀어버리는 기득권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너무 많고 추하다. 나이가 들수록 죽음과 더불어 우아아게 물러나는 것에 대해서 자꾸 생각하게 된다.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아름답다고 했는데, 아름답게 까지는 아니어도 추한 모습은 되지 않기를 바래본다.

무빙

초능력도 유전이 되나요? 네! 한국형 슈퍼히어로라더니 자식이 부모의 초능력을 물려받고, 부모의 목표는 오로지 그런 자식을 보호하는 것인데, 거기에 남한한테 절대로 뒤질 수 없는 북한이 끼어든다. 그나저나 초능력자는 자식 키우는 능력도 탁월한지 아이들을 하나같이 너무 착하고 훌륭하게 키워냈다. 오랜만에 보는 문성근이 악역으로 나와서 한혜주가 고3 아들을 둔 아줌마로 나와서 좀 놀랬지만, 연기 잘하는 중견배우들과 더불어 처음보는 파릇파릇 예쁘고 귀여운 어린 배우들도 많아서 재미있게 봤다. 다만 초능력 액션 히어로에 느와르가 합쳐지면서 잔인한 장면이 좀 빈번히 등장해서 제대로 못본 장면들이 있다. 무협지가 폭력이 아닌 멜로이고, 착한 사람이 이긴다더니 나쁜 놈들 죽이고 (한국형 답게?) 제대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The Accountant

레인맨이나 우영우에서처럼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이 주인공인 경우에는 보통 고도의 집중력, 암기력, 계산능력 등을 바탕으로 특출한 능력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에서는 독특하게도 거기에 전투력을 더했다. 군대에서 심리 작전부대의 장교인 아버지가 어려서부터 혹독하게 훈련을 시켜 두뇌와 전투력이 합쳐진 일당백 수준의 회계사가 탄생했다. 거대 범죄조직들의 회계사 노릇을 하면서 번 돈을 잘 세탁해서 신경 과학 연구비로 지원하고 필요하면 눈깜짝 안하고 사람을 죽임으로서 다시한 번 선과 악은 흑백처럼 깨끗이 나눠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치료하는 분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생각할지 좀 궁금하다.

악귀

Hulu 에서 우연히 발견했는데 디즈니랑 계약을 맺었는지 디즈니가 만들었다는 한국 드라마들이 여럿 보인다. 김태리 이뻐라하는데다 인터넷에서 재미도 있다고 해서 기대를 가지고 보기 시작했다. 총 12회인데 처음 4회까지 참 재미있게 봤고 그 뒤부터 서서히 좀 지루해졌다. 후반부로 갈수록 제법 큰 반전이 두어번 정도 있었는데 재미가 급상승하는 효과는 없었다. 부자 되겠다고 대대로 귀신 씌어서 사람 죽여가며 살겠다는 사람, 한술 더 떠서 충분히 부자됐으니 그만 하겠다는 남편이랑 아들 며느리까지 죽게 만들고, 급기야 손주까지 죽이려 하는 사람이 아직까지도 이해가 안된다. 악귀를 연구하고 그에 따른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시력을 잃지 않으려고 악귀에 씌인 교수님의 경우에는, 돈때문은 아니기는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버리고 시력을 택한 것은 안타까웠다. 사는게 힘에겨워 죽고싶다는 생각 한두번 아니 여러번 안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요즘 세상 (특히 한국) 살기 정말 빡빡한 것 같아서, 조금은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난 참 좋은 시절 살아서 감사하다는 생각을 근래에 많이 한다.

The Lego Movie

별 기대없이 봤는데 꽤 재미있었다. (배트맨만 조연급이고 나머지는 까메오 수준이기는 하지만) 배트맨, 슈퍼맨, 원더우먼 등 워너 브라더스 영웅들이 많이 등장하고 여러 세계를 넘나드는데 이런저런 영화들이 많이 떠올라 약간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배트맨이 좀 찌질하고 푼수끼가 있어서 좀 웃겼고, 전체적으로 코믹하고 심각하지 않아서 가볍게 봤다. 틀에 박힌 삶을 살지 말고, 자신을 믿으면서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심오한(?) 메시지를 전하기에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볼만하다고 생각한다.

Tetris

Tetris 는 고등학교때 버스 정류장 앞 오락실에서 버스 기다리면서 참 많이 했던 게임이고, 나중에는 3차원 테트리스며 배틀 테트리스도 즐겨했다. 공산주의 국가 구소련의 한 프로그래머에 의해서 개발된 후, 이 세상에 전파되는 과정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이 영화를 보고서야 알게되었다. 테트리스가 4를 뜻하는 테트라에 만든 사람이 좋아했던 테니스를 합성한 단어라는 이제껏 사실도 몰랐었다. 뚱뚱한 CRT 모니터 속 검정바탕에 녹색폰트로 쓰여진 코드를 보니 옛날옛날 처음 컴퓨터 배우던 시절 생각이 나며서 기분이 묘했다. 컴퓨터랑 프로그래밍이랑 참 좋아했는데, 지금도 좋아는 하지만 예전만큼은 아니다. 요즘도 비디오랑 책 보면서 프로그래밍 공부 틈틈히 하고는 있고 재미도 있는데, 과연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Pachinko

기대를 가지고 보기 시작했는데 그래서 그런가 대단히 재미있지는 않았다. 딱히 공감이 되는 캐릭터도 없고, 남자 주연급인 손자나 (에이즈로 생을 마감한) 그의 첫사랑 일본 여자도 이해가 잘 안되고, 가족몰래 독립운동 하는 천사같은 목사님도 왠지 부담스러웠다. 작가가 한국계이기는 해도 미국사람이구나 그냥 그런 생각이 자꾸 들었다. 게다가 첫아들이 어떻게 됐는지, 첫아이의 아빠인 첫사랑도 (총 8 에피소드 중 하나를 할당할만큼 중요한 역할인데도?) 어떻게 됐는지도 안알려줘서 얘기를 듣다가 만 그런 느낌이다. 그래도 시절이 시절인지라 관동대지진도 나오고 한국인을 벌레 취급하는 일본인들 볼때마다 슬픔과 분노를 함께 느꼈다. 어떻게 되찾은 나라인데 한국정부가 친일을 넘어 숭일을 하는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