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ost Wanted Man

연기잘하는 반가운 얼굴들이 많은건 좋았는데 재미있었다고 하기에는 (내 수준에는) 내용이 좀 복잡하고 심오했다. 내용이나 작품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목표는 고상하고 훌륭해도 그 목표를 이뤄내는 과정은 치사하고 이기적이고 폭력적일 수 있고, 다른 조직과의 협업은 역시나 참 힘이 드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겪어보지 못했고 그래서 알지 못하는 세상을 다룬 영화인데, 조금 있으면 개봉하는 Mission Impossible 7 과 비교해보면 같은 스파이/첩보물인데도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 영화가 조금 더 현실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했다.

모멘트

옛날옛날 LG 가 금성사였던 시절에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라는 유명한 광고 슬로건이 있었는데, 이 책은 한 발 더 나아가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는 경우를 보여준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인 이 소설은 배경이 베를린이고 여주인공 이름이 페트라여서 괜히 더 마음이 끌렸다. 너무도 많이 사랑한 것이 너무나 심한 배신감을 유발해서 안타까운 이별로 끝나게 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매맞은 사람이 다리뻗고 잔다고, 변명한마디 못해보고 끌려가서 암에 걸려 인생을 마감하는 여주인공이 (워낙에 강인한 사람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오히려 “편안하게” 삶을 영위한 것 같다. 읽고 있으면 마음이 따끔따끔한 이런 비극적인 내용을 만들어내야 하는 소설가들이 참 안됐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A Man Called Otto & The Whale

지난주 유럽으로 출장(+ 미니휴가)을 다녀오며 비행기에서 본 두 편의 영화. 전혀 다른 소재이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하다는 점과 (크기는 좀 다르지만) 감동을 선사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A Man Called Otto 는 (2019년 겨울 한국에 갔을때 읽었던) 스웨덴을 배경으로 쓰여진 오베라는 남자라는 책의 미국판 영화다. 한여자만을 사랑한 지독하게 고지식한 남자 주인공은, 얼핏보면 꼰대의 절정판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변화된 세상에 적응하여 충만한 삶을 살아낸 속과 겉이 일치하는 엄청 괜찮은 사람이다. 그래서 영화가 내용을 알고 봐도 지루하지 않고, 꼰대스러운 주인공에도 불구하고 짜증나지 않고 감동적이었다고 생각한다.

The Whale 은 전혀 예상치 못한 내용으로 오랜만에 비행기 안에서 울게 만들었다. 일핏보면 역겹다고 느낄 수 밖에 없을만큼 살이 찐 주인공은 그로인해 곧 죽음을 앞두고 있다. 나이들어 자신의 성 정채성을 깨닫고 사랑하게 된 동성의 애인과 그를 위해 떠나면서 관계가 단절된 8살짜리 딸 둘을 잃고 폭식과 그에 따른 비만을 통해 삶을 마감하려는 듯한 주인공, 그의 너무나도 깊은 슬픔이 느껴져서 나도모르게 자꾸 눈물이 났다.

Get It Done: Surprising Lessons from the Science of Motivation

부제는 놀라운 교훈이지만 그닥 놀라운 내용은 없었다. Motivation 은 Behavior Change 하고 겹치는 부분이 적지 않지만 독자적인 내용도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달으며 읽었다. 행동심리를 처음 접했을 때는 완전히 신기하고 재미있었는데, 관련 내용을 읽고 배워나갈수록 사람이 참 조종하기 쉬운 동물이구나 싶어서 좀 슬프기까지 하다. 제대로된 목표를 세우고 이뤄가는 과정을 즐기고 성과를 적절하게 보상하면서 살아가야겠다. (이 다짐은 많이 추상적이라 좋은 목표는 아니다.) 그리고 너무 늦지 않게 아무 것도 안하고 그냥 놀기를 목표로 삼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Poo Poo Point, 5th

어제는 비가 내려서 포기하고 일요일인 오늘 다시 찾은 Poo Poo Point. 비가 내리지는 않았지만 많이 흐렸는데, 지난번 비가 왔을 때보다 정상에서의 시야는 더 안좋았고 지난번과는 정반대로 사람이 거의 없었다. 적당히 흐려 사람이 적어서 정상근처에서 좀 쉬다가 올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보헤미안 랩소디

현직 판사가 쓴 소설인데, 살인 및 사기 사건을 미끼로 호기심을 자극하길래 한참 재미있게 읽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정신분석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는 것으로 방향이 바뀌어 당황스러웠다. 미치도록 재수없는 사기꾼 의사가 살짝 처벌을 받기는 하지만, 살인은 자살로 밝혀지며 이야기는 허망하게 끝난다. 2014년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라는데 나한테는 전체적으로 별로였다. 어쨌저나 사법시스템은 아무리 생각해도 돈과 권력이 있는 놈들을 보호하는 도구인것 같다.

신성한, 이혼

호기심 자극하면서 아주 재미있게 시작했는데 뒤로 갈수록 이건 뭐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요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들이 많이 제작되는 것 같은데, 가벼운 전개때문에 부담이 없는 것은 좋은데, (내가 이제 나이든 옛날사람이라 그런가) 진한 감동이나 공감은 힘들다. 왜 포도알을 채워가며 기다렸는지, 왜 하필 조승우가 대단한 피아니스트였는지 이유가 있을거라 생각하고 기대했는데,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심지어 포도알은 패소해도 칠한 적도 있다는 사실까지 실토해서 뜨아했다.) 아무래도 만화에 가깝다고 생각하며 봐야하는 것 같다. 조승우와 (응답하라로 기억에 남은) 김성균의 연기력에 심하게 비교되는 다른 조연배우들의 연기는 조금 안스러운 마음까지 들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