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속담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과만을 중시하는 상황을 나타낼 때 흔히 쓰이는데, 요즘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사는거 같아 심하게 안타깝다. ㅠ.ㅠ

요즘에는 초등학생도 다 알거같은 속담얘기를 하려는건 아니고...

언제부턴가 나는, 모로 가도 서울로 가게 되는거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물론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는 전제하에. 목적지가 서울이라는 사실을 알고 노력하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혹시 아직 정확히는 모르고 있더라도 목적지를 찾으려는 노력을 함께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믿는다.

HCI 리서처가 되어 행복한(?!!! ^^) 연구원 생활을 하고 있는 나는 거의 8년전 미국에 유학 올 때만 해도 HCI 의 H 자도 몰랐다. 물론 그로부터 4년전 대학원에 입학 할 때는 유학같은건 말그대로 꿈도 꾸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었던건 초등학교 5학년때 처음 컴퓨터를 배운 이래로 오로지 하나, 난 컴퓨터가 좋고 그래서 컴퓨터를 다루는 직업을 갖고 싶다는 거...

현역때 조금 더 좋은 학교(라고 믿었던 학교)에 가보려고 컴퓨터랑 관련없는 과에 지원했다가 보기좋게 떨어지고 울기도 참 많이 울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재수해서 전산과에 간게 너무 다행스러운 일이다. 물론 재수안하고 바로 갔어도 좋았겠지만, 난 재수를 통해서도 여러가지를 배웠을 뿐더러, 대학생활 일년이 쉬프트 되면서, 내 유학에 결정적인 역활을 했던 두가지를 정확히 딱 필요할 때 맞이하게 됐다. 1) 유학을 목표로 공부하던 진호오빠랑 함께 대학원 및 데이타웨이브 생활, 2) 대학원 졸업에 맞춰서 터진 IMF 로 엘지전자 입사취소 (원래는 입사대기였는데 내가 안간다고 해버렸다.)

유학은, 데이타베이스 공부해보겠다고 그거 나름 잘한다는 멜랜드에 지원해서 갔더니, 그분야에서 훌륭하다고 소문나셨던 교수 세분이 다른 학교로 떠나셔서 얼떨결에 HCI 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처음에 지도교수로 모시고 싶던 교수님한테 TA 지원했다 거절 당하고 ㅠ.ㅠ, 다른 교수님 한분 밖에 안남았는데 덜컥 암에 걸려버리셔서 심히 좌절했었다. 그런데 교수님 우리 교수님 너무나 다행히도 극적으로 암을 극복하신 후 딱 때맞춰 복귀하셔서 짜투리 돈을 써서 나를 RA 로 고용하사 멜랜드 미아가 될뻔 했던 내가 HCI 연구에 감격의 첫발을 내딛게 됐다.


난 나한테 중요하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는 굉장히 우유부단한데, 예를들면 식당에 가면 아무거나 먹어도 다 좋다고 하면서 결정을 못해서 희선이한테 구박을 먹는다. 다른사람의 편의를 나름 잘 봐주는 편인데, 나한테 주어진 책임과 의무가 아니라면 죽어도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참으며 하는게 아니라, 대부분은 어떻게 해도 나한테는 큰 상관이 없기때문에 다른사람에게 선택권을 주는거다.

철들고 나서는,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에, 세상 사람들이 보는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대신에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노력했고, 때려죽인다고 해도 하기 싫은 일은 되도록이면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절대 하지 않았다. 재수시절 대학원서 쓰러 고3때 담임을 찾아갔을때, 다시 좀 더 커트라인 높은 대학 쓰라고 선생님들이 온갖 회유와 협박을 하셨지만, 삼수는 절대로 하기 싫어서 처음 계획했던 대로 꿋꿋이 연대 전산과에 지원했다. 다행히도 우리엄마아빠는 내가 싫다는 일을 억지로 시키지 않고 알아서 하게끔 나를 잘 내버려 두셨다. (어쩌면 아무리 시켜도 어차피 안하니까 일찌감치 포기하셨던건지도 모름... ㅋㅋ)

나는 운전하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많이 하는 편인데,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끊임없이 묻고 대답하려고 노력한다. 힘들어도, 시간이 좀 오래 걸리더라도, 난 삼천포 말고 서울로 갈거다...
2008/07/21 21:15 2008/07/21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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